엔씨소프트는 양복쟁이가 망친 보잉이 되고 싶은가?   잘못된 '체질 개선'

2024-05-13 09:49:19


올해 초부터 시작된 엔씨소프트(이하 엔씨)의 '체질개선'에는 물음표가 따라온다. 게임회사는 모든 문제의 근본을 게임에서 찾아야 하는 법. 그러나 엔씨는 다른 곳에서 해법을 찾고 있기 때문이다.

 

엔씨는 올해 정기총회에서 박병무 공동대표를 선임했다. 박 공동대표는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를 시작으로 플레너스 엔터테인먼트((구)로커스홀딩스) 대표, TPG Asia(뉴 브리지 캐피탈) 한국 대표 및 파트너, 하나로텔레콤 대표, VIG파트너스 대표를 역임한 전문 경영인이다.

 

박 대표의 또 다른 전문분야는 구조조정. 박 대표의 취임 이후 엔씨도 구조조정의 길을 걷고 있다. 1분기 컨퍼런스콜에서 박 대표는 5월 중 권고사직을 단행해 본사 인원을 4천여 명 까지 줄여나갈 계획이며, 서울 삼성동 엔씨소프트 구 사옥도 매각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참고로 엔씨는 한 때 5,500여 명의 직원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 외에도 재무적인 이야기만 계속됐다. 하락된 주가상승을 위해 약 1천억 규모로 자사주 매입을 할 예정이며, 10% 이상 보유되는 자사주는 초과된 규모만큼 소각할 것이라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엔씨와 시너지가 날 수 있는, 재무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는 회사 한 두 곳과 M&A 이야기가 오가고 있다고도 전했다.

 

게임과 관련해서 나온 이야기는 '개발 기간을 단축시키기 위해 초기 개발단계부터 트렌드를 고려해서 제작에 들어갈 예정'이라는 '효율화' 뿐이었다.

 

컨퍼런스콜은 성공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초라했던 1분기 실적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하향곡선을 그리던 엔씨의 주식은 10일 하루 10.57% 상승했다.

 

당장 급한 불을 꺼야하는 엔씨의 입장에서 이러한 방향은 필요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해결책들이 장기적으로 엔씨소프트에게 도움이 될 것인가하는 물음표가 남는다.

 

첫번째, 엔씨는 트렌드를 따라가는 기업이 아니라 만들어 간 기업이었다. 리니지 시리즈, 아이온, 블레이드앤소울, 리니지M 등 엔씨가 지금까지 내놓은 게임은 전부 시장을 주도하는 게임이었다. '리니지 라이크'가 양산 될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엔씨가 시장을 오랫동안 주도했다는 이야기다.

 

이러한 '트렌드세터'의 위치를 버리고 '팔로어'가 되겠다는 선언은 엔씨의 아이덴티티를 버리겠다는 말과 다름이 아니다. 설령 트렌드세터의 위치가 흔들리고 위기가 닥쳤다고 할 지라도, 포기하기보다는 그에 대한 보다 뼈저린 고민을 해야하는 것이 아닌가.

 

두번째, 엔씨는 위기를 게임의 혁신으로 극복해왔다. 2000년대 초반에도 온라인 게임 시장에 '리니지 라이크' 붐이 일었고 그 때도 엔씨에 위기는 닥쳤다.

 

그러나 엔씨는 포기하지 않았다. 국내 게임업체 최초로 100억원 이상의 제작비를 투자하고, 최대 동시 접속 가능 인원이 32명에 불과했던 언리얼 엔진 2를 손수 뜯어고치는 등 심혈을 기울여 완성시킨 '리니지 2'로 추격자들을 다시 한 번 따돌리는데 성공했다.

 

뒤 이어 내놓은 '아이온'도 블리자드의 '월드오브워크래프트'로 자신감이 저하되어있던 국내 게임의 자존심을 회복시켰고, 국내 게임사 최초로 제작비 800억원을 투자한 '블레이드 앤 소울' 역시 영화적 연출과 화려한 액션, 깊이있는 게임성으로 당시 바짝 뒤따라오던 중국 MMORPG와 '차원이 다름'을 보여줬다.

 

그런데 지금 엔씨는 '게임 혁신'이 아니라 '인력 감축'으로 위기를 극복하려하고 있다. 과연 이게 옳은 방향일까?

 

게임은 물론, 영화나 K-Pop 같은 콘텐츠는 흥행 비지니스다. 99개의 콘텐츠가 망해도 1개의 콘텐츠가 흥행에 성공하면 그 동안의 손해를 거뜬히 커버한다.

 

엔씨도 마찬가지였다. 지금이야 '엔씨'하면 리니지, 아이온, 블소 같은 성공한 IP만 떠올리지만 국내에 존재하는 게임 회사 중 가장 많은 실패를 겪은 회사가 엔씨소프트이다. 타뷸라 라사, 샤이닝 로어, SP잼, 스매쉬스타 등 지금까지 엔씨가 시장에 출시해서 '망한' 게임은 100개가 넘는다. 그토록 많은 실패를 통해 성공을 만들었던 엔씨가 '이제 트렌드에 충실한, 성공할 수 있는 게임만 만들겠다'는 선언은 자기 모순이자 한국게임산업에 대한 배신이다.

 

물론 주주들은 100만원대까지 갔던 주가가 10만원대 후반으로 내려앉았기 때문에 지금의 전략에 지지를 보내고 있다. 그러나 엔씨의 주가는 아이온 발매 직전까지만 해도 3만원대였다. 아이온의 성공으로 3배 넘게 상승했고, 이후 블소의 성공으로 30만원, 리니지M의 성공으로 100만원을 찍었을 뿐 원래 엔씨는 100만원짜리 주식이 아니다.

 

그런데 '원래 100만원짜리 주가'처럼 대하면서 지금의 위기를 구한다고 구조조정 전문가를 공동 대표로 영입해 비용감소, 트렌드, 부동산 등등만 언급하는 엔씨는 실패가 두려워 제 살마저 깎아먹고 있는 '양복쟁이' 회사로 전락한 것과 다름이 없다.

 


 

안전한 비행기의 대명사 '보잉'은 1997년, 맥도넬 더글라스와 합병을 하기 전까지는 무조건 엔지니어가 먼저인 회사였다. 그렇기에 기체에 문제가 생기거나 사고가 날 때 마다 빠르게 개선하고 대책을 세울 수 있었다. 그러나 합병 후 맥도넬 더글라스 출신 임원들은 본사 이전과 구조조정을 단행했고, 엔지니어가 나간 자리에 금융인력을 확충했다. 제조업 회사가 양복쟁이 회사가 된 것이다.

 

그 결과는 참담하다. 보잉 기체에 품질문제가 제기되기 시작했고 후발주자인 에어버스의 기세를 무리하게 따라잡으려다 기체결함으로 인한 대형 추락 사고를 발생시켰다. 지금까지도 품질 결함, 제조공정 결함, 불량부품, 납기 지연 등 온갖 문제가 발생하며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다시 말하지만 게임회사는 문제의 해답을 게임에서 찾아야 한다. 한국 게임산업의 혁신을 이끌어왔던 자신의 위치를 부디 잊지 않기 바란다.​ 

김성태 / mediatec@gameshot.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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