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적이고 퇴폐적인 디스토피아 'RUINER'   눈에 뻑뻑한 게임

2017년 10월 13일 17시 10분 14초


쿼터뷰 시점으로 사이버펑크 디스토피아 세계를 연출한 슬래셔 액션 게임 '루이너(RUINER)'는 '다잉라이트', '디스워오브마인' 등의 자주 회자되는 작품들에 참여한 베테랑 개발자들이 독립해 지난 2014년 설립한 독립 스튜디오 레이콘 게임즈(Reikon Games)가 개발하고 화끈하지만 잔혹하고 고어한 느낌을 주는 강렬한 색채의 '핫라인 마이애미'를 비롯한 작품들을 퍼블리싱한 디볼버 디지털(Devolver Digital)이 퍼블리싱을 맡은 작품이다. 본 작품의 한글화는 카게하시 게임즈가 담당했다.

작중 시점은 2091년으로, 인류의 과학기술은 날이 다르게 발전해나간 것과 달리 인간의 본성은 변화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발생한 디스토피아와 시스템을 때려부수는 주인공이라는 꽤 흔하지만 매력적인 소재들을 가져다 쓴 작품이 바로 레이콘 게임즈의 루이너다. 플레이어는 루이너의 세계에서 가상현실 회사 '헤븐'이 관리하는 사이버 메트로폴리스인 '렝콕(Renkok)'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들을 경험하며 그를 지원하는 '그녀'와 '형', '헤븐'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이야기들을 하나 둘 밝혀나간다.

루이너는 배경과 마찬가지로 퇴폐적이고 폭력적이며 때로는 섹시함을 연출과 이야기를 통해 어필하는 루이너는 동일 퍼블리셔가 퍼블리싱한 핫라인 마이애미와는 또 다른 지향점의 매력을 가지고 있는 작품이다. 배우기에도 어렵고, 개선점들이나 아쉬운 점이 있어 완벽한 작품이라고 칭송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여유가 있다면' 한 번 쯤은 잡아볼 작품이다.


​시작부터 폭력적이고 어두운 느낌을 주는 타이틀 화면.

■ 뜯어보는 맛이 있는 세계

트레일러를 통해 루이너를 접한 사람도, 이미 스팀을 통해 구매해 게임을 즐긴 사람도 알 수 있는 사실이겠지만 루이너 속의 발달한 세계는 완벽히 공상 속에서나 가능할 모습을 담는 SF 장르의 보편적 이미지와는 조금 다르다. 아무리 발달한 기술을 손에 넣었어도 인간성은 바뀌지 않았다는 말 답게 현재의 우리와 유사한 생활의 모습들이 남아있는 것을 작품 속에서 보여준다.

전투가 아닌 조사나 서브 퀘스트 수행 파트에서는 기계를 통해 결손된 부위를 달아놓고 큰 무리 없이 사용하는 모습을 보면 확실히 진보한 과학 기술의 덕을 보고 있는 것은 맞지만 로봇 형태의 머리를 달고 있어도 몸은 인간 여성의 것 그대로인 모습의 사이비 종교 느낌의 여인이나 호객행위를 하는 유흥여성, 돈을 벌기 위해 불법을 자행하는 렝콕 남부의 모습 등을 통해 현대에도 존재하는 퇴폐적인 문화 속 모습들이 그대로 남아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죽어야만 정신을 차릴 모양이군'을 곱게 설파하는 자매님

전투 파트에서도 시종일관 머리에 쓴 헬멧으로 대사를 띄워대는 전광판 주인공의 사이보그 같은 모습이나 각종 기계 인체, 대시와 에너지 보호막 등은 발달된 기술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지만 작품 초반의 배경이 되는 낙후된 렝콕 남부 지방에서는 여전히 파이프를 휘두르는 집단 등 현실적인 모습을 담은 갱들이 주로 등장한다. 물론 작품의 이야기가 전개될 수록 미래적인 모습의 적들이 등장하기는 한다.

발달된 기술 속 세계를 보여주면서도 현실과의 접점이 녹아든 루이너 속의 세계는 구석구석 들쑤셔 구경할 맛이 있는 장소다. 사실 튜토리얼 격인 초반부 전투 스테이지를 플레이하면서도 뭔가 귀를 간질이는 익숙한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플레이어를 따라오는 지뢰가 뱉는 대사다. 지뢰는 한국어로 플레이어를 위협해온다. 한국어는 첫 스테이지 후 처음 가는 장소인 렝콕 남부를 돌아다녀도 들려오며 이외에도 몇 가지 언어들이 군중의 웅성거림 사이에서 들려온다. 이외에도 2091년에도 여전히 살아있는 PETA 같은 단체의 모습도 확인할 수 있으며 플레이어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꽤 높은 게임의 난이도와 맞물려 언젠가 제공될 전투 없는 '투어리스트 모드'를 통해 더욱 자세히 루이너 속 높은 디테일의 세계를 감상할 수 있게 될 예정이기도 하다.



■ 속도감 있는 전투

루이너는 굉장히 속도감 있는 진행이 특징적인 작품이다. 사실 렝콕 남부에서 다른 캐릭터들과 대화를 나누거나 서브퀘스트를 진행하는 것도 마을 안에서 이루어지는 간단한 퀘스트인 경우가 있고, 전투 파트로 진입하면 짧은 길이의 스테이지들이 연속적으로 이어진다. 또, 스테이지의 진행 뿐만 아니라 스테이지 속 전투의 흐름 역시 굉장히 빠르다. 실상 게임을 완전히 숙달하지 않으면 수도 없이 그 빠른 속도감에 적응하지 못하고 죽어나가는 일을 반복하게 된다.

전투는 마우스와 키보드를 모두 활용해 벌이게 되는데, 게임 패드 조작이 익숙하다면 패드를 활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패드 조작이 상대적으로 굉장히 현란한 편이지만 그렇다고 마우스와 키보드를 사용한다 해서 손이 여유로운 것도 아니니 그야말로 익숙함의 차이 정도로 조작을 선택하면 될 것으로 보인다.


찍는 입장에선 ​대시 포착이 가장 어렵다.

전투 스테이지는 거의 일괄적으로 각 지점마다 수많은 졸개들의 등장, 한 구역의 졸개를 모두 처치하면 나타나는 무기 분쇄기를 통한 이 세계의 화폐 '카르마' 획득, 다음 구역으로 전진 후 다시 반복, 그러다 어느 시점에서 등장하는 보스급 적, 이를 처치하면 다시 이어지는 위 흐름의 반복이다. 때문에 점점 진행하다 보면 빠른 템포의 전투와 잦은 부하 개체의 등장, 높은 난이도는 이후 기술할 시각적 효과와 더불어 플레이어에게 큰 피로감을 안겨주는 리스크로 돌아온다.

플레이어가 사용하는 다양한 기술, 즉 방어막 전개나 대쉬 접근 또는 회피 등은 적으로 등장하는 졸개 A도 쓰는 평범한 기술이라 정말 빠르게 전투가 지나간다. 조금 위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전투의 난이도가 꽤 높은 편이라 가장 쉬운 난이도로 하더라도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금방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며, 보통 난이도는 튜토리얼에서도 플레이어가 죽음에게 위협받도록 몰아넣는 수준이다. 이미 난이도의 하향 조정이 조금 있었음에도 말이다.


​유혈이 낭자하지만 그렇게 고어틱하지는 않다.

그나마 카르마를 모아 레벨이 오를 때 얻는 스킬포인트를 통한 능력 업그레이드 시스템으로 특정 기술을 해제해 게임 속 꼼수가 가능해지는 시점이 오면 최종 보스까지는 중반부 특정 보스를 제외하면 일사천리로 이루어진다. 아니, 오히려 전투 자체가 그 꼼수 패턴으로 대부분 돌파 가능하게 되어 현저히 죽는 수가 줄어든다. 뭐, 게임을 진행하면 점점 죽는 횟수가 주는 것은 맞지만 수도 없이 죽어나가는 초반부에 비해서 꼼수를 터득하고 나면 가장 높은 난이도에서도 그 꼼수 패턴을 통해 게임 돌파가 한결 쉬워진다.



■ 볼륨과 보조 요소 아쉬운 스토리

배경 설정을 간단히 소개하면서 흔히 볼 수 있는 SF나 사이버펑크의 단골 소재들인 저항하는 주인공과 그 조력자, 위기에 처한 형제와 타락한 디스토피아 등이 눈에 띈다고 했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흔한, 좋게 말하면 플레이어가 친근감을 느끼기 쉬운 소재들을 활용한 루이너의 스토리는 기대를 많이 한 상태로 본다면 아쉬움을 안겨줄 것이 자명하다. 반전요소는 하나를 제외하면 어느정도 예상 가능한 클리셰의 집합이고, 그 클리셰의 집합에서마저도 마지막에 줄 수 있는 임팩트 부분에서는 아쉬움을 남긴다. '어느 의미'로는 최후반부에 밝혀지는 이야기가 충격적으로 다가올 수도 있지만.

추후 배포 DLC 등을 통해 주변 이야기가 더 밝혀질 것이라고 했지만 지금 당장 본편의 이야기만으로는 다소 아쉬운 점들이 분명히 남아있고, 꽤 매력적으로 다가온 주변 설정들이나 대화 가능한 NPC들의 이야기가 적은 점도 스토리에서의 아쉬움을 남겼다. 게임을 진행하면서 특정 단체나 등장인물 등에 관한 이야기, 주울 수 있는 적의 무기 하나하나마다 읽을 수 있는 설정들이 메뉴를 통해 표시되지만 이것에서 그치지 않고 서브 스토리 등을 통해 이에 관련된 이야기들을 플레이어가 직접 경험할 수 있는 요소가 적다는 점도…….


​시종일관 이모티콘을 쓰는 조력자 '그녀'

전체적인 플레이 타임이 4시간 내지는 6시간 정도인 것은 이 아쉬움에 더욱 불을 당긴다. AAA급 게임에 비하면 싼 가격이지만 반복 플레이 요소도 분기점에 따라 갈리는 두 엔딩 중 하나를 보기 위한 것을 제외하면 그다지 찾아볼 수 없는데 플레이 타임도 짧으니 다소 질소 포장이 연상되기도 한다. 각종 사이드 스토리가 공개될 DLC들은 기대되지만 여기서도 큰 즐거움을 찾을 수 없다면, 글쎄. 루이너는 쭉 아쉬운 작품으로 남을지도 모르겠다.


​서브 퀘스트를 주는 훌리건

■ 자극적인 만큼 눈이 피로해

디스토피아적 배경 설정이나 네온 사인이 뒤엉킨 다양한 렝콕 남부의 광경을 통해서도 작품의 분위기가 느껴지는데, 루이너의 화면 연출은 자극적이면서도 사이버펑크 특유의 느낌을 주인공 캐릭터의 헬멧과 엮어, 또는 게임 화면을 구성하는 광원이나 색상을 통해 그보다 더 말초적인 단계에서 플레이어가 직접 게임의 분위기를 한껏 느끼게 해준다. 트레일러에서도 확인되었지만 플레이어는 말을 하는 대신 얼굴에 뒤집어 쓴 헬멧을 통해 화면에 글씨나 그림 등을 내보내 의사표현과 소통을 한다. 어깨를 으쓱하는 등 제스쳐를 사용해서도 의사소통을 하기는 하지만 그건 텍스트로만 표시되니 넘어가자.

전체적으로 어두운 분위기 속 휘황찬란한 네온사인의 밝은 불빛들과 사방으로 튕겨나가는 에너지 탄환, 번쩍번쩍 빛나는 불빛과 튜토리얼 스테이지에서 특히 강렬한 노이즈와 함께 스테이지가 끝날 때까지 집요하게 플레이어에게 '보스를 죽여라'라며 세뇌를 해대는 의문의 남성, 자극적인 느낌을 한껏 끌어올리는 붉은 색상의 적극적인 활용 등. 이 모든 것들은 플레이어가 작품의 분위기를 피부로 느끼게 해주는 장치다. 특히 초반부에 플레이어가 짜증날 정도로 일정한 간격을 투고 보스를 죽이라고 종용하는 남자의 목소리에 끼어들어 저지하려는 음성과 이미지가 겹치는 연출은 인상적이다.



하지만 어두운 분위기 속 비산하는 빛이나 노이즈 등의 연출을 통해 빠르게 점멸하는 빛은 마치 옛 포켓몬스터 애니메이션에서 가상 세계의 포켓몬인 폴리곤이 첫 등장한 에피소드를 시청하던 아이들에게 광과민성 발작을 일으킨 포켓몬 쇼크처럼 플레이어에게 광과민성 발작을 일으키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과했고, 그보다 더한 것은 작품 내내 등장하는 시뻘건 색조가 빠르게 피로감을 준다는 점이다.

또, 굉장히 빠른 호흡으로 진행되는 게임 특성상 조작의 겹침으로 인한 방해는 최대한 줄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자주 사용되는 대시의 고정 버튼이 키보드와 마우스로 진행할 경우 마우스 오른쪽 클릭으로 지정되는데, 일시적으로 시간을 늦추고 원하는 지점으로 연속 대시하는 조작의 발동이 우클릭을 길게 해야만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때때로 대시 조작을 씹어버리는 현상이 발생해 긴박한 순간에 대시를 사용하지 못하는 일이 발생한다.


​시도때도 없이 시뻘건 색을 좋아한다.

전투에서의 타격감도 아쉬운 느낌이다. 근접 공격은 그나마 원거리 무기에 비하면 아주 조금 나은 편이지만 원거리 무기, 특히 연사 라이플형 무기의 경우는 쏘는 맛이 심각하게 미미하다. 업그레이드를 통해 실드 브레이크를 배운 후에야 조금 개선되기는 하지만 게임을 어느 정도 진행해서 해당 스킬을 얻기 전까지는 타격감을 거의 얻기 힘들다는 점에서 타격감 중시형 플레이어에게는 그 과정 자체가 굉장한 고통으로 다가올 것.

난이도의 높낮이 문제도 조금 있다. 애초에 개발자들의 권장 난이도라며 가장 높은 난이도를 추천하는 것을 보면 본 작품이 원래 어려운 난이도를 특징적으로 내세우고 있다는 점은 알 수 있지만 일부 스킬들을 활용해 보통 난이도도 어려운 작품에서 어려움 난이도에서도 통용되는 꼼수를 사용할 수 있고, 이를 사용하기 시작하면 진행이 일사천리로 이어진다는 부분이 다소 문제다. 게다가 최초의 튜토리얼 스테이지에서 만나는 첫 번째 보스의 경우 굉장히 어렵지만 그 다음으로 만나는 보스는 허무할 정도로 쉽게 파이프 공격의 경직에 정신도 못 차리고 당해버리거나, 중반부의 특정한 보스가 굉장히 어려운 것과 달리 최종 보스는 생각보다 쉽다던가 하는 난이도 배분 실패가 아쉽다.


​앗 하면 죽는데 대시가 씹히면…….

루이너는 장점도 많은 작품이지만 반면에 그와 거의 동일한, 혹은 그 이상의 단점도 안고 있는 작품이다. 짧은 스토리 부분에서는 DLC 스토리라는 동앗줄이 있고, 구경할 수 있는 투어리스트 모드를 통해 배경설정 등의 어필도 가능하겠지만 스피디함이 돋보이는 슬래셔 액션 게임에서 타격감이 거의 없다는 점, 조작에 있어서 문제가 있다는 부분 등은 역시나 굉장한 아쉬움을 안겨줬다.​ 본 기자는 괜찮았지만 영어 번역투에 거부감을 느낀다면 한글 번역된 대사들에서도 다소 불편함을 느낄 수 있다.

 


 

 

조건희 / desk@gameshot.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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